독서운동 독서칼럼
독서문화 살찌우는 저자의 역할 2013-11-18 오전 10:15:06
글쓴이 :
한국독서능력개발원
조회수 :
2487

백원근의 출판 풍향계


최근 법륜 스님의 신간이 전국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 1위 자리를 한 달 넘게 지키고 있다.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는 내용의 힘이 컸겠지만, 그 원동력 가운데 하나는 ‘즉문즉설’로 유명한 스님의 전국 순회 강연회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강연장마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청중을 끌어들이는 저자의 강연을 들은 이라면 그가 쓴 새 책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독자에게 저자는 이미 ‘내가 아는 사람’이고, 아는 사람의 신작에 눈길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20년 전인 1993년, 군사정권을 벗어나 문민정부가 시작되던 그해에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의 첫 권을 펴냈다. 지난해 300만부 돌파의 기록으로 국내 인문교양서 분야에서 신기원을 만들어낸 책이다. 이 시리즈는 단순한 관광이 아닌 문화 답사라는 새로운 여행 방식을 탄생시켰으며, 국내 서점 매장에 인문교양서 코너가 만들어지도록 단초를 제공했다. 그런데 이 책이 대중적으로 읽힌 원동력에는 출간 초기부터 저자가 전국을 누비며 펼친 ‘슬라이드 강연회’ 효과가 톡톡히 작용했다. 저자의 해박한 입담과 우리도 잘 몰랐던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에 청중들은 환호하며 책을 집어들었다.
 


출판 선진국인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저자들의 활약상이 우리보다 훨씬 보편화되어 있다. 대통령 선거 때 후보가 전국 각지에서 유권자를 만나듯, 많은 구미의 작가들은 신작을 홍보하고 독자를 만나기 위한 전국 순회를 당연한 일로 생각한다고 한다. 저자들은 학교, 도서관, 서점 등을 찾아다니며 강연회와 사인회로 바쁜 일정을 소화한다. 어린이책 작가들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데 열심이다. <양철북>을 쓴 귄터 그라스는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지만, ‘독서 여행’이라는 주제로 전국의 작은 서점들을 순회하며 낭독 모임을 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면서도 폼 나는 무대만을 고집하지 않는 독자 사랑, 서점 사랑의 노익장이 경외스럽다.
 


우리나라에서는 신간이 나오면 유명 저자들이 대형 서점에서 사인회나 강연회에 나선다. 근년에는 인문학 강좌 열풍에 힘입어 기업체나 관공서, 도서관 등에서 저자 초청 강연회를 여는 일도 잦아졌다. 그러나 강연 요청이 쇄도하는 극소수의 유명 저자들과 달리, 상당수 저자가 다양한 공간에서 독자들과 만나도록 계기를 만드는 사회적 노력은 매우 부족하다. 대개는 책을 써내면 그걸로 끝이다. 판매량이나 독자 반응이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출판사의 마케팅 능력 부족을 탓하는 저자들도 있다. 저자 자신, 그리고 저자의 활동이 가장 중요한 마케팅 요소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감동적인 글을 쓴 여러 저자와 만나는 경험을 통해 찌릿찌릿한 문화적 감수성과 독서욕을 자극받는 것은 어린이나 어른이나 다르지 않다. 저자와 독자의 직접 대면은 다음에 출간될 저자의 새 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저조한 독서율과 출판시장 경색을 탓하기에 앞서, 대중적인 분야의 저자들부터 ‘독자를 찾아가는’ 저자 낭독회나 강연회가 사회문화로 뿌리내리도록 응원해줄 필요가 있다. 이를 지원하는 독서정책, 그리고 저자들의 동참과 독자들의 호응이 맞물릴 때 독서 생태계의 토양은 비옥해질 것이다.
 

백원근 재단법인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