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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쑥! 지혜 쑥! 눈높이 논술] 2. 독도를 지켜 낸 사람들 2016-05-31 오후 3:03:41
글쓴이 :
한국독서능력개발원
조회수 :
1087
[역사 쑥! 지혜 쑥! 눈높이 논술] 2. 독도를 지켜 낸 사람들

 

"너희 배들이 어찌하여 우리 조선 땅에서 고기를 잡느냐"
평범한 어부 안용복, 목숨 걸고 국경 넘어 일본 태수와 담판


이지영(서울 청계초등 교사)


안용복은 조선 숙종 시대의 어부로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분명하게 밝힌 사람이에요. 당시 조선은 울릉도와 독도에 사람들이 살지 못하게 하는 공도정책(조선 초기 왜구가 울릉도를 거점으로 조선 본토를 침략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울릉도를 무인도로 만든 정책)을 펴고 있었는데, 그 틈을 이용하여 일본 어부들이 고기를 잡고 조선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렸어요. 안용복은 이에 분개하여 일본 어부들과 맞서다 일본으로 끌려갔어요.

안용복은 뛰어난 기개와 지략으로 오히려 일본으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그들의 영토가 아님을 인정하고 일본 어부들이 울릉도에서 고기를 잡지 못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내지요. 그러나 조선으로 돌아온 안용복은 국경을 넘었다는 이유로 벌을 받고 2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 있게 됩니다.

그러는 2년 동안 조선과 일본은 울릉도를 사이에 두고 분쟁을 계속 했고, 안용복은 자신이 약속을 받아 왔음에도 일본이 계속 울릉도와 독도에서 문제를 일으키자 13명의 사람들과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 냅니다. 안용복의 활약 덕분에 조선은 숙종 이후 철종 때까지 일본과 다투지 않았어요. 안용복은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가 아니었음에도 이처럼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고 나라를 위하여 큰 일을 했지요. 하지만 너무나 속이 상하게도 그는 지난 번과 같은 이유로 귀양을 갑니다. 다음은 안용복이 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용기를 내어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 낸 이야기입니다.







울릉도에 도착해 보니 우리 배 세 척이 고기를 잡고 있었어요. 그때 마침 일본 배 다섯 척이 다가왔어요. 안용복은 뱃머리에서 당당하게 이야기했어요.

"너희 일본 배들이 어찌하여 우리 조선 땅에서 고기를 잡느냐. 어서 썩 물러가라!"

그러자 겁이 난 일본 배들은 재빨리 독도로 도망을 갔어요. 하지만 독도도 우리 땅인 것은 마찬가지였지요. 일본 사람들은 독도에서 불을 피우고 밥을 지어 먹고 있었어요. 그들을 뒤따라간 안용복은 당장 배에서 내려 몽둥이로 일본 사람들의 솥이며 밥그릇을 모두 깨뜨려 버렸어요.

"감히 우리의 울릉도와 독도를 제 집 드나들 듯하다니……."

안용복은 도망치는 일본 배를 쫓아가는 척하며 호키 주까지 배를 몰았어요. 호키 주의 태수와 다시 담판을 짓기 위해서였지요.

아무 벼슬도 없는 나의 말을 일본 관리들이 들어 줄 리가 없다. 더군다나 글을 받아 내기란 더욱 불가능한 일이겠지…….

그래서 안용복은 높은 벼슬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꾸미고 태수를 만나러 갔어요.

"나는 조선에서 온 안용복이다. 울릉도와 독도는 예부터 우리나라 땅이었다. 그런데 너희 나라 배들이 우리 땅인 울릉도와 독도에 함부로 들어와서 고기를 잡아갔다.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글을 써서 약속해라."

/소중한 우리 것 재미난 우리 얘기 7, 나라를 지킨 호랑이 장군들(주니어랜덤 펴냄)


<역사 논술 교실>

△1교시


여러분이 안용복이었다면, 억울하게 벌을 받고도 다시 목숨을 걸고 울릉도와 독도를 지킬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2교시

안용복은 높은 벼슬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과연 안용복이 거짓으로 자신을 꾸미고 일본 태수를 만난 것은 잘한 일일까요?

안용복이 힘들게 지켜 낸 독도를 현대에 이르러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제 2ㆍ3의 안용복이 존재했어요. 다음 글을 잘 읽고 이같이 나라가 독도를 지킬 수 없는 상황에서 홍순칠과 독도 수비대가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조사해 보세요.

<박스>





경찰서장의 말대로 일본 배들이 독도에 얼씬거리기 시작한 것은 6ㆍ25전쟁의 뜨거운 불길이 한반도를 활활 태우던 때였다. 우리 겨레가 남과 북으로 갈려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이자, 일본은 그 틈을 노려 독도를 가로챌 속셈이었다. 그러나 1952년 1월 18일 우리나라의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에 바다 경계선을 정해 발표했다. 이 경계선은 두 나라 사이의 평화가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평화선이라 불렀다. 당연히 독도는 이 평화선 안에 들어와 있었다. 평화선 발표 열흘 뒤인 1월 28일, 일본은 우리 정부에 편지를 보내 따지고 들었다.

다케시마는 틀림없는 일본의 영토이므로, 한국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일본의 억지는 바로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일본은 말로만 억지를 부리는데 그치지 않았다. 틈나는 대로 일본 경비정을 독도로 보내 한국의 고깃배들을 내쫓았다. /독도 하늘에 태극기 휘날리며(뜨인돌어린이 펴냄)


 

출처 : 소년한국일보
http://kids.hankooki.com/lpage/nie/201503/kd2015030816214213625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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