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운동 독서칼럼
책, 또는 떨림의 첫 경험 - 김정란의 책갈피 2016-02-23 오후 3:27:44
글쓴이 :
한국독서능력개발원
조회수 :
1622

나이를 먹으면, 가슴떨리는 일들은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사실 그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는 하다. 늘 같은 일상의 반복. 그저 그런 일들과 감동 없는 관계들의 이어짐. 그 일상성이라는 것도 요즈음처럼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그 안정적 윤곽조차 허물어져서 더욱더 암울한 분위기를 가지게 되어 버렸다. 며칠 뒤에도 오늘의 일상이 현재의 특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예측불가능한 것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그 예측 불가능성이 가슴 떨리는 일로 이어질 확률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한다. 비상식이 상식을 유린하고 비합리가 합리를 죄인 취급한다.

시는 아득히 먼 곳으로 도망쳐 버렸다. 생은 빛나는 비전을 잃고 겨우 하악하악 숨을 쉬고 있을 뿐이다. 젊은이들은 절망하고, 노인들은 거짓에 목을 매달고 있다. 거짓은 뻔뻔하게도 권력의 옷을 걸치고 모든 진실에 대한 추구를 틀어막고 저주하고 있다. 생은 대한민국에서 생에 대한 추문으로 전락해 버렸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빛나는 기억들이 아직 다 지워진 것은 아니다. 어디에선가 아직도 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기억들. 사실은 그 순간에 기대어 2016년의 비참한 헬조선에서 우리는 모든 너절함을 견디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을 둘러싸고 처음에 생성된 불꽃은 아직도 파랗게 빛나고 있다. 나는 그 순간을 잊은 적이 없다. 매일처럼 거짓의 언어가 세상을 휩쓸어도 나는 그 첫 순간, 진실이 현현하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내가 언어와 맺게 된 특별한 관계를 다시 체험하게 해주는 그 기적의 순간으로.

나는 한글을 아주 늦게야 깨우쳤다. 정확한 지식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요즈음 아이들은 3~4세 무렵이면 거의 한글을 읽을 줄 아는 것 같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이면 상당한 문자해독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에 나는 그저 떠듬떠듬 글자를 읽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어머니는 그 당시의 다른 어머니들과 달리 나를 가지고 어지간히 쪼물락거리셔서, 피아노 학원부터 합창단까지 별의별 데를 다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런 어머니도 글자는 열심히 안 가르치셨던 것 같다.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날 ‘그 일’이 일어났다. 어떤 계절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런데 그 직후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봄에서 여름 사이의 어떤 날이었던 것 같다. 책이 펼쳐져 있고 그걸 들여다보는 작은 여자아이가 있고 그리고 빛이 보인다. 빛은 따스하게 느껴진다. 그 이미지의 주변은 하얗게 지워져 있다. 즉 그 이미지는 어떤 절대성 안에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훗날 가상적으로 재체험된 과정을 내가 이상화된 이미지로 재구성한 것일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그 순간의 절대성은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팔삭동이이다. 어머니는 늘 대가리 부분이 유난히 커다란, 어머니가 누룽지를 긁을 때 쓰시는 놋숟가락을 아래 위로 까딱까딱 흔드시며 말씀하시곤 하셨다.
“딱 이랬다니까. 대가리만 커다랗고, 몸뚱이는 똑 젓가락 같았지. 세숫대야에 넣고 씻겨도 휘휘 돌아가서 물이 남을 지경이었다니까…”
그러면 나는 얼굴이 벌개져서, 그 못생긴, 하도 누룽지를 긁어서 한쪽이 비스듬히 닳아버린 그 찌그러진 놋수저를 원망스럽게 노려보고는 했었다. 그리곤 늘 이어지는 어머니의 18번.
“아이구, 내가 산파 공부를 했길래 살렸지. 안 그랬으면 넌 세상 구경 못했을 거다.”
그렇게 달을 못 채우고 나와서인지, 꽤 나이가 들 때까지 세상과 나 사이에는 늘 어떤 안개막 같은 것이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한참동안 아직 태어나지 못한 채로 세상 이쪽의 어떤 장소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늘 세상이 무서웠다. 지금 내가 가지게 된 강한 자아는 무지막지한 내적 투쟁의 산물이다. 나는 나라는 괴물과 아주 오랫동안 싸웠다.

그렇게 구체적인 사물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형편이었으므로, 글자라는 추상적 대상을 어떻게 제대로 인지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그 날 오후에 그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나는 갑자기, 사물과 글자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물질적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아, 이 글자가 그러니까 ○○이라고 읽는 거고, 그것은 ○○한 물건에 붙여진 이름인 거구나. 그러니까 글자라는 게 그냥 있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를 나타내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거구나. 그래서 나는 헬렌 켈러가 사물과 이름의 관계를 파악하던 날 느꼈던 환희를 아주 잘 이해한다. 나도 그 비슷한 기쁨을 생생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언어는 그렇게 나에게 삶의 진실을 전하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펄펄 뛰는 실체로 처음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책에 미친 아이가 되었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길을 가면서도, 차를 타고서도, 교실 안에서 수업을 받으면서도, 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면서도 책을 읽었다. 새로운 세계의 발견이었다.
나이가 먹고, 그 신비한 원체험은 이제 내 안에서 흐릿하다. 수많은 책을 읽어도 소녀 정란이 느끼던 기적적인 감동은 이제 나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실은 어떤 인간은 절대로 늙지 않는다. 내 안 어디엔가에 언어와 글자에 매혹되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계를 바라보던 어린 여자아이가 살아있다. 그 아이가 지금은 나의 스승이다. 아이가 늙은 나의 흰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힘내. 나는 늘 여기 있어. 지치면 날 찾아와. 언제라도 너를 다시 가슴뛰는 책의 세계로 데려다줄게.”



김정란 |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그르노블 3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상지대 교수. 2000년 소월시문학상 수상. 시집 《다시 시작하는 나비》 《매혹, 혹은 겹침》 《스·타·카·토 내 영혼》 《용연향》과 평론집 《비어 있는 중심: 미완의 시학》 《연두색 글쓰기》 사회문화산문집 《말의 귀환》 《분노의 역류》 등과 번역서 《람세스》 《로즈 멜리 로즈》 등이 있다.
 
 
출처 : 독서신문 책과 삶
http://www.bookandlif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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