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운동 독서칼럼
공공도서관에서 시간 보내기 - 송승훈 (교사, 독서교육 전문가) 2014-04-15 오후 2:58:55
글쓴이 :
한국독서능력개발원
조회수 :
2166
어렸을 때 시간이 나면 동네 오락실을 갔다. 집을 나오면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동네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심심하면 오락실에 갔다. 그때 동네 초등학생 형들이 나를 보고 ‘오락귀신’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으니 얼마나 자주 그곳에 들렸는가 알 만하다.
내가 사는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이다. 처음 이곳에 온 16년 전에는 오락실마저 없는 시골이었다. 그때 학교 뒤 포도밭 사이에 있는 다가구 주택에 방 하나를 빌려 살았는데 학교 끝나고 건너편 들판 너머에 있는 오남리나 양지리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게 내 놀이였다. 주말에는 왕숙천을 끼고 생겨난 마을들의 구석구석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구경하며 재미있어 했다. 골목길마다 사람들 사는 모습이 담긴 집과 담장과 배밭과 밭두렁이 보기 좋았다.
지금은 주말에 집을 나서면 읍내 한가운데 있는 ‘문화의 집’ 1층에 자리 잡은 작은 도서관에 간다. 지난 5년 사이에 내가 사는 마을에 작은 도서관이 한 개 생기고, 3층이나 되는 꽤 번듯한 공공도서관이 한 개 생겨서 갈 곳이 늘었다.
작은 도서관은 교실 한 칸 정도 되는 크기인데 은근히 읽을 책이 있다. 최근에는 하인리히 야콥이라는 사람이 지은 빵의 역사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심심하면 사먹던 빵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어 즐거웠다. 요즘은 빵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베이킹파우더를 쓰는데 옛날에는 밀가루 반죽을 해서 공기 중에 두면 자연발효가 되어 부풀어 올랐다고 한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면, 늘 보던 것도 감탄을 하며 보게 된다.
사람은 언제 즐거움을 느낄까. 우리가 즐거워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나는 일단 여러 가지를 놓고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을 때 재미가 있다. 이 점에서 도서관은 합격이다. 아무리 작은 도서관이어도 몇 천 권 정도는 책이 있기 마련이어서 나 한 사람이 가서 읽을 책을 충분히 고를 수 있다. 내가 고르는데 누가 참견을 하지 않아서 좋다. 그야말로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속이 시원하다.
그리고 나는 공짜로 무엇을 할 수 있을 때 마음속에서 기쁨이 샘솟는다. 공공도서관은 이 기준에도 맞다. 입장료가 없기에 편하게 들락날락하고 돈 주고 사야 하는 책을 공짜로 몇 권이나 빌려오니까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공공도서관 운영비는 시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하니 크게 보면 공짜는 아니다. 하지만 세금은 사람의 형편에 따라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더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은 덜 내는 체제여서 좀더 윤리적이다. 한마디로 공공도서관에는 빈부격차가 없다.
학교에서는 학생들과 바깥에 나가서 활동하는 시간이 있다. 예전에는 특별활동이라고 하다가 요즘에는 계발활동이라고 부른다. 나는 몇 년 동안 책읽기반을 운영했다. 책읽기반이 하는 일은 내 마음에 드는 근사한 공공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것이다.
가깝게는 동네에 있는 오남도서관에 가서 책을 각자 편한 대로 보고, 멀게는 버스를 타고 한시간쯤 가면 나오는 광진정보도서관에 간다. 광진정보도서관은 한강이 보이는 전망이 멋지다. 우리는 책을 읽다가 기분이 나서 한번씩 한강을 걷고 온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교양강좌를 수준 있게 하는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도 우리가 해마다 가는 곳이다.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은 언덕 비탈길에 있어서 가는 김에 산동네 골목길 걷기 체험도 꼭 같이한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앞에서 마음이 좋아진다. 요즘은 건축에 신경을 써서 새로 짓는 도서관들을 보면 눈이 즐겁다. 하지만 보기에 좋은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도서관 안에 들어갔을 때 그 공간에 사람을 생기 있게 해야 제대로 된 건축이다. 건축가 정기용 선생이 설계한 순천 기적의 도서관에 가면 건축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건축이 잘 되었다고 소문난 은평구립도서관을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올해 안에 가봐야겠다.
덧붙이는 말, 도서관에 가서 한 시간 안에 먼저 할 일이 있다. 그건 잠드는 일이다. 거친 바깥공기를 쐬다 고요한 도서관 안 공기를 마시면 나는 잠이 솔솔 온다. 한숨 자고 나서, 깨어나 책을 읽으면 정말 사람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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