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칼럼
어린왕자, 나를 ‘길들이다’ - 최정화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통역사) 2014-05-21 오후 3:01:21
글쓴이 :
한국독서능력개발원
조회수 :
2203

어디선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문구를 가지고 사람들은 다양한 해석을 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문구가 독서의 중요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독서를 통해서 인지하고 사고할 수 있는 언어가 늘어나게 되면 내가 느끼고 깨닫게 되는 세계도 확대되기 때문이다. 나는 현직에서 국제회의통역사로 활동할 때부터 지금까지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프랑스, 영어 뉴스를 보고 듣는 것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있다.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내 사고는 깊어지고 어휘는 풍부해지며 동시에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세계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 중 내 삶의 지침이 되었고 나를 풍성하게 해주고 있는 책이 있는데, 바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이다.
몇 번을 읽어도 색다른 느낌을 주면서 마음에 짠하게 스며드는 책이자 나의 잠언이기도 하다.
어린왕자: “‘길들여진다’는 게 무슨 뜻이야?”
여우: “그건 너무나 자주 소홀히 다루어지는 행위야,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지.”
어린왕자: “관계를 맺는다고?”
여우: “넌 아직도 나에게는 수십만 명의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작은 소년일 뿐이야. 난 네가 필요 없고, 네 쪽에서 보면 네겐 내가 필요 없지. 네게 난 수십만 마리의 다른 여우와 다를 바 없는 한 마리 여우일 뿐이야.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린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지. 나에게 넌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되고, 나 역시 네게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되는 거야.”
……
“생각해 봐. 네가 나를 길들이면 얼마나 멋질지…… 금빛 곡물이 널 떠오르게 할 거야. 그리고 바람이 밀밭을 스치는 소리를 듣는 걸 좋아하게 될 거야.”
평소 ‘길들이다’라는 단어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지? 나는 ‘길들이다’라는 단어 자체가 남을 나에게 맞추는 조금 난폭한 단어라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어린왕자』에서 나온 ‘길들임’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조금 불편했다. 하지만 여우와 어린왕자, 어린왕자와 장미 사이의 ‘길들임’은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아름답고 소중한 사귐의 과정이었기에 마음에 찡한 감동과 여운으로 다가왔다. 그 후 나는 사람과 관계 맺는 과정에서『어린왕자』라는 책을 통해 얻게 된‘길들이다’라는 개념을 삶에 녹여 내려고 노력해 왔다.이 노력은 내가 통역사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통역사라는 직업도 결국에 연사와 혹은 동료와 함께 일하는 직업이기에 관계의 중요성은 더할 나위 없이 크기 때문이다. 『어린왕자』를 통해 ‘관계 맺는 행위‘, 즉 ‘길들이는 행위’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은 나는 각 사람에게 시간과 마음을 쏟아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길들이고자 했고 또 그들에게 나만의 캐릭터가 스며들게 만들도록 부단한 노력도 기울였다.
관계를 맺을 때 이해타산을 따져서 머리를 굴렸다기 보다는 이 넓은 지구 위의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내 곁에 있게 된 사람들이 너무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길들이고 길들여지다 보니 어느새 주위에는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통역사로 세계를 누비고 다니다 한국의 이미지가 평가 절하 되어 있음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한국의 올바른 이미지를 알리자는 취지로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용감하게 설립했는데 나에게 선물로 주어진 소중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풍성한 관계의 기쁨을 누리면서 지금까지도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는 비결은 어렸을 때 읽은 『어린왕자』에 있지 않을는지. 책은 사람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통찰력을 제시해 주기 때문에, 청소년 시절에는 학교 공부뿐만 아니라 인문학 서적은 물론 소설, 수필들을 골고루 읽음으로써 각자의 삶을 풍성하게 채워가야 할 필요가 있다.
좋은 책을 꼭꼭 씹어서 맛보면, 나만의 어휘 사전이 풍부지면서 내 정신세계의 테두리는 물론 활동의 테두리도 넓어지는 뭉클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독서는 때로는 외롭고, 지루하고, 정적인 활동이라고 보여지기도 하지만 결과를 보면 가장 풍부하고, 열정적이며, 동적인 활동이다. “정말?” 이라고 눈이 동그래진 청소년 독자들이 있다면 한 번 체험해 보시기를. 말초신경의 짜릿한 감각에 중독되어서 이러한 깊은 울림, 전율을 체험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독서를 통하여 나만의 언어와 통찰력을 확보해 나감으로써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청소년들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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